
애니 원작 기반의 액션 코미디 영화 <언더닌자>가 2월 5일 국내 극장가를 찾아왔다. 언더닌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닌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품이다. 일상 한복판에 숨어든 '닌자'라는 상상력과 후쿠다 유이치 감독 특유의 연출로 관객들의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있다. 화려한 기술이나 정의로운 영웅 서사를 기대했다면 당황할 수도 있지만, 대신 이 영화는 현대 사회에 스며든 닌자의 현실적인 모습과 씁쓸한 분위기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애니원작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은 가볍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 생각하게 만드는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언더닌자 애니원작이 가진 특이한 세계관
언더닌자의 세계관은 처음부터 낯설다. 닌자는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어딘가에 숨어 살아가는 사람들로 등장한다. 다만 이들은 영웅도, 전설적인 존재도 아니다. 조직에 소속돼 있지만 체계는 허술하고, 임무는 불분명하며, 삶은 생각보다 초라하다. 애니원작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닌자라는 설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그들의 대단함보다 무기력함을 더 자주 보여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오히려 현실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지점에서 언더닌자는 ‘숨겨진 능력자’ 이야기가 아니라, 시스템 속에 묻혀버린 개인의 이야기로 방향을 튼다. 영화는 이 원작의 결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현실적인 분위기를 강조해 관객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원작 또한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언더닌자는 <아이 엠 어 히어로>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하나자와 켄고의 동명 만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늘 그렇듯 사회의 이면을 비틀어 바라보는 시선을 이 작품에서도 유지한다. 닌자는 정의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애매한 존재로 묘사된다. 조직은 존재하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명령은 내려오지만 책임은 남지 않는다. 이러한 냉소적인 설정은 현실 사회의 구조를 떠올리게 하며 묘한 설득력을 가진다. 여기에 영화는 원작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각적 감각을 덧입힌다. 특히 Creepy Nuts의 중독성 강한 주제곡은 작품 전체의 리듬을 끌어올리며, 언더닌자를 가장 현대적이고 ‘힙한’ 닌자 이야기로 완성시킨다.
언더닌자 이야기 전개
이야기의 흐름은 일반적인 영화와 다르다. 뭔가 큰 사건이 터질 것처럼 보이다가도 허무하게 끝나고,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던 캐릭터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산만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이 방식이 의도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주인공 역시 전형적인 주인공상이 아니다. 능력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삶에 대한 태도도 어딘가 흐릿하다. 그는 싸우기보다 버티고, 선택하기보다 떠밀려 움직인다. 이런 모습은 언더닌자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상황을 던져놓은 채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보고 난 뒤에도 장면 하나하나가 천천히 떠오르게 된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관객의 인식을 일부러 비튼다. ‘닌자는 사라졌다’고 믿고 있는 시대를 전제로 깔아두지만, 곧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낸다. 공식 조직 NIN에 소속된 하급 닌자 쿠로는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의 임무 역시 거창하지 않다. 코단 고등학교에 잠입한 언더 닌자, 즉 UN을 찾아 조용히 저지하는 것. 문제는 그 과정이 결코 조용하지 않다는 데 있다. 쿠로는 평범한 학생으로 위장한 채 중간고사와 친구 관계, 그리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협 사이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 이중생활은 긴장감보다는 어딘가 어설프고 웃음을 유발하며, 언더닌자 특유의 코믹한 리듬을 만든다. 세계를 구한다는 거대한 명분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이는 이 설정은, 닌자조차 평범한 청춘의 일부로 전락한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SS급이라 불리지만 정작 현실은 허술한, 기상천외한 ‘닌무’가 여기서 시작된다.
결말이 주는 해석과 여운
결말은 명확하지 않다. 모든 갈등이 해결되거나, 주인공이 성장했다는 확신도 없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은 계속된다. 이 결말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언더닌자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건 ‘특별한 존재의 승리’가 아니라, 특별해 보였던 존재조차 결국은 구조 안에서 소비된다는 현실이다. 닌자라는 설정은 그 사실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결말 이후 남는 건 통쾌함이 아니라 묘한 공허함인데, 그 감정이 오래 남는다는 점에서 언더닌자는 쉽게 잊히지 않는 작품이 된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언더닌자의 분위기는 급격히 변한다. 학교라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며, 그 안에 숨어 있던 UN의 핵심 전력 사루타와 야마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이전까지 이어지던 코믹한 리듬은 사라지고, 교내는 순식간에 무차별적인 폭력과 학살이 뒤엉킨 공간으로 변한다. 쿠로 역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지하 시설에서 야마다와 정면으로 맞선다. 이 전투는 승패를 가르는 결투라기보다 서로를 소모시키는 파국에 가깝다. 두 인물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쓰러진 직후, 관객이 기대하던 구원이나 반전 대신 조직 NIN의 냉혹한 선택이 드러난다. 증거 인멸을 위해 인공위성 ‘톤’을 이용한 레이저 폭격이 가해지고, 학교와 지하 시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제거된다. 이 장면은 개인의 희생이나 정의가 조직 논리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지워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아야카와, 마지막에 등장하는 쿠로와 동일한 얼굴의 인물은 이 모든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언더닌자의 결말을 더욱 공허하고 불안한 여운으로 밀어 넣는다.
언더닌자는 화려한 닌자 액션을 기대하면 어긋나는 영화다. 대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무력함과 구조적인 아이러니를 닌자라는 소재로 풀어낸다. 애니원작을 알고 봐도, 모르고 봐도 다른 방식의 인상을 남기며, 기존 닌자 영화에 지쳤다면 충분히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찾는다면 언더닌자는 좋은 선택이다.